대한민국의 영토는 1개의 특별시, 6개의 광역시, 1개의 특별자치시, 1개의 특별자치도 8개의 도로 이루어져 있다. 이를 광역단체로 명명하여 분류한다. 이 광역단체들 중에서 고유의 자연환경과 고유의 문화를 가지고 다른 광역단체들과는 확연하게 다른 색을 가진 곳이 있다. 바로 강원도다.

2021년 11월 10일 강원도 도시 중 하나인 강릉시를 배경으로 한 영화 '강릉'이 개봉했다. 장혁과 유오성이 주연을 맡았으며 장르는 '남자 장르' 느와르다. 

▲ (사잔: 네이버 영화, 아센디오, 본팩토리, 데이드림엔터테인먼트, 조이앤시네마, 스튜디오 산타클로스, 아센디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 (사잔: 네이버 영화, 아센디오, 본팩토리, 데이드림엔터테인먼트, 조이앤시네마, 스튜디오 산타클로스, 아센디오, 제이앤씨미디어그룹)

영화 '강릉'이 그랬던 것처럼 한국영화의 역사를 돌이켜보면 강원도를 배경으로 한 영화들이 여럿 있었다. 동해와 맞닿아 있는 바다, 태백산맥을 품은 산지 그리고 한 번 듣고서는 도저히 바로 알아들을 수 없는 억센 방언 등의 특색은 많은 영화인들을 강원도로 부른다.

영화의 매력, 그리고 강원도의 매력까지 효과적으로 담아 관객들의 시선을 훔친 영화들을 다시 감상해보자. 만약 그 영화들을 전부 본다면 굳이 차에 몇 시간 동안 몸을 담지 않아도 강원도 여행을 끝마친 기분이 들 것이다.

 

 

봄날은 간다

영화 '봄날은 간다'는 연출을 맡은 허진호에게나 주연배우였던 이영애·유지태에게 인생작으로 남아있다. 담백한 연출법을 따르면서도 이영애와 유지태가 선보이는 깊은 사랑 이야기는 '봄날은 간다'를 한국영화사에 가장 대표적인 로맨스 영화로 올려놓았다.

▲ 영화 '봄날은 간다' 中 삼척시 상맹방해수욕장 (사진: 네이버 영화, 싸이더스, 쇼치쿠 컴퍼니 어플로즈 픽처스, 시네마 서비스)
▲ 영화 '봄날은 간다' 中 삼척시 상맹방해수욕장 (사진: 네이버 영화, 싸이더스, 쇼치쿠 컴퍼니 어플로즈 픽처스, 시네마 서비스)

'봄날은 간다'가 유난히 대중들의 기억 속에 오래 그리고 짙게 남아있는 이유는, 강원도라는 지역을 영화 안에 잘 녹여냈기 때문이다. '봄날은 간다'는 특정 강원도 도시에서 촬영하지 않았고 특정 강원도 도시를 배경으로도 하지 않았다. '봄날은 간다'는 정선, 강릉, 삼척, 동해 등 강원도 전역을 담았다.

주인공 상우와 은수는 강원도 어르신들의 소리를 녹음하러 정선 보호수 마을도 갔다. 그리고 상우와 은수는 강릉 오죽헌에서 서로를 알아갔다. 삼척 신흥사, 대나무 숲, 상맹방해수욕장 등에서 두 사람은 계속해서 강원도의 소리를 담았다. 마지막으로 동해 삼본아파트에서 서로의 사랑을 시작하고 끝냈다. '봄날은 간다' 서사 전부에는 강원도 그 자체였다.

▲ 영화 '봄날은 간다' 中 상우와 은수가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강릉 오죽헌
▲ 영화 '봄날은 간다' 中 상우와 은수가 서로를 알아가기 시작한 강릉 오죽헌

좋은 영화들이 보이는 공통점 중 하나가 특정 장소를 극 안에 적절히 담는다는 것이다. 이 사례에 '봄날은 간다'도 해당된다. '봄날은 간다'는 강원도를 담았다.

 

선생 김봉두

2000년대 초반 들어서 한국영화는 전성기를 맞았고, 특히 코미디 영화들이 다수 개봉해 한국 코미디 영화가 2000년대 초반 범람하기도 했다. 그 중심에서 탁월한 연기력도 보이고 동시에 적절한 웃음도 관객들에게 선사하여 한국영화계 주연급 배우로 발돋움한 배우가 바로 차승원이다.

▲ (사진: 네이버 영화, CJ 엔터테인먼트)
▲ (사진: 네이버 영화, CJ 엔터테인먼트)

차승원은 2001년부터 '신라의 달밤', '라이터를 켜라', '광복절 특사' 세 편의 영화를 연달아 찍으면서 '차승원표 코미디 영화'의 전성기를 알렸다. 그리고 또 한 번의 코미디 영화를 찍는데 코미디 그 이상의 감동을 '선생 김봉두'로 관객들에게 전달했다.

'선생 김봉두'의 주인공은 셋이다. 촌지만을 밝히는 김봉두, 그 김봉두를 변화시키는 산골 아이들과 주민들, 그리고 김봉두와 주민들이 동고동락 했던 강원도 정선의 오지마을이다. 격한 정선 특유의 사투리와 정선만의 산골·계속의 절경은 아무리 김봉두가 도시 사람이라도 정선 마을 분위기에 동화되지 않을 수 없게 다른 사람으로 변화되지 않을 수 없게 무장해제시켰다. 

▲ 강원도 정선군 남면 무릉리 삼거리교에서 바라본 강
▲ 강원도 정선군 남면 무릉리 삼거리교에서 바라본 강

강원도는 우리나라 광역단체 중에 약 150만 명으로 가장 적은 인구 수를 기록하고 있다. 사람이 없어 결국 폐교하고 마는 강원도 산골 분교의 운명, 도시와 멀어 순수 그 자체를 지니고 사는 정선 주민들, 영화 전체를 감싸는 정선의 자연까지 '선생 김봉두' 역시 강원도 영화다.

 

웰컴 투 동막골

 

전쟁영화는 아마 한국영화계에서 계속해서 등장할 것이다. 한국전쟁은 역사의 비극이지만, 그 비극을 영화로 달리 표현하고 싶은 영화인들의 동기를 막을 수 없을 테니 말이다. 단, 같은 한국전쟁을 영화로 만들더라도 다르게 만들어야 한다. 분명 전쟁영화긴 하나 뭔가 다른 결을 보이는 전쟁영화가 '웰컴 투 동막골'이다.

▲ (사진: 네이버 영화, 필름있수다, 쇼박스)
▲ (사진: 네이버 영화, 필름있수다, 쇼박스)

큰 틀에서 봤을 때 구조는 '공동경비구역 JSA'와 비슷하다. 남도 북도 아닌 중립적인 장소에 어쩌다 모이게 된 남과 북 군인들은 그 안에서 드라마를 써가며 서로 교감하고 반전(反戰)을 깨닫는다. '웰컴 투 동막골'도 이 구조를 따른다. 길을 잃은 국군과 인민군이 전쟁이 발발한지도 모르는 강원도 동막골에 모이게 돼 동막골 주민들과 함께 살아가게 된다. 그 안에서 전쟁 시기에는 꿈꿀 수도 없는 판타지적 묘사가 이어져 전쟁을 잊게 만든다.

'웰컴 투 동막골'의 명장면인 일명 '하늘에서 비처럼 팝콘들이 내려와' 장면도 옥수수를 많이 재배하는 강원도를 배경으로 했기에 가능했을 것이다. 그리고 국군과 인민군이 합세해 멧돼지를 잡는 장면도 강원도 특유의 고지대 언덕에서 벌어진다. 강혜정이 열연한 여일의 명대사(?) "마이 아파"에서도 강렬한 강원도 사투리를 느낄 수 있다. 곳곳이 강원도다.

▲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율치리에 위치한 '웰컴 투 동막골' 촬영지
▲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율치리에 위치한 '웰컴 투 동막골' 촬영지

실제 강원도 평창군 미탄면 율치리에는 '웰컴 투 동막골' 흥행에 힙 입어 촬영 세트장을 그대로 보존해놨다. 현재까지도 '웰컴 투 동막골'을 직접 체험할 수 있는 것이다. 강원도에서.

 

라디오 스타

영화의 주인공들은 강원도에 연고를 두지도 않았다. 주인공 중 한 명은 극 중 1988년도 가수왕을 차지하며 문명과 아주 가까이하고 있는 스타였다. 그리고 그 스타를 묵묵히 지켜주는 매니저까지. 강원도와는 전혀 상관없을 것 같은 주인공이 등장하는 영화가 강원도 영화로 분류된다. 그 영화는 2006년 개봉돼 제27회 청룡영화상 사상 초유의 공동 남우주연상을 수상하게 한 영화 '라디오 스타'다.

▲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사 아침, 시네마 서비스)
▲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사 아침, 시네마 서비스)

온갖 사건사고를 일으킨 왕년의 가수왕 최곤이 결국 라디오 DJ를 하게 된다.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은 지방 방송국에서 송출되는 것도 아닌 영월의 중계소해서 송출된다. 처음에는 내키지 않아 했지만 영월 주민들의 이야기를 진솔하게 담으며 '최곤의 오후의 희망곡'은 인기를 얻어간다. 영월 주민들의 이야기가 흐르는 동시 영화에는 영월 명소들이 동시에 비친다. 동강, 청령포, 청록다방, 장릉 등. '라디오 스타'는 영월의 사람과 풍경을 동시에 영화의 기법으로 교차시킨 것이다.

'라디오 스타' OST에는 노브레인이 다시 부른 이선희 원곡 '아름다운 강산'이 포함돼있다. 역시 영화에서도 이 음악이 흐를 때가 있는데, 그 순간 마치 드론으로 영월을 촬영한 듯한 고공샷이 펼쳐진다. 음악과 영상이 한 데 어우러지는 영월의 절경이었다.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위치한 라디오스타박물관
▲ 강원도 영월군 영월읍에 위치한 라디오스타박물관

'웰컴 투 동막골'처럼 영월군에서도 영화 ‘라디오 스타’ 인기를 이어 영월읍에 라디오스타박물관을 개관했다. 영월에서 강원도 청취를 느끼면서 라디오스타박물관까지 방문해본다면 영화와 지역이 융합된 보다 완벽한 강원도 여행이 될 것이다.

 

또 하나의 약속

강원도에 속해있는 대부분의 지방자치단체는 엄청난 크기의 면적을 자랑한다. 강원도의 홍천군(1,820.34㎢)은 서울특별시(605.2㎢) 면적에 약 3대에 달할 정도로 큰 면적 가지고 있다. 그런데 강원도지도를 보면 유난히 면적이 작아 숨어있는 도시가 있다. 속초시는 강원도 북동쪽에 있으며 가장 작은 면적(105.76㎢)이다. 이 속초시를 배경으로 영화 '또 하나의 약속'이 만들어졌다.

▲ (사진: 네이버 영화, 또 하나의 가족 제작 위원회, 에이트볼 픽처스, OAL)
▲ (사진: 네이버 영화, 또 하나의 가족 제작 위원회, 에이트볼 픽처스, OAL)

'또 하나의 약속'은 평화롭게 시작한다. 주인공 택시기사 상구는 강원도 속초에 대한 애정으로 도시에서 온 손님들을 태울 때마다 울산바위를 시작으로 하여 속초 소개를 꼭 하며 속초에 대한 애정을 드러낸다. 그리고 딸이 대기업 반도체 분야에 취직하게 되자 멍게에 소주를 마시며 행복해한다.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되기까지 상당히 어려움을 겪은 영화다. 삼성 반도체 공장에서 백혈병 환자가 발생해 이를 산업재해로 인정받기 위해 법정 공방을 다툰 '삼성 황유미 사건'을 모티브로 했다. 높아만 보이는 도시 문화의 벽에 속초 사람 상구의 고군분투는 더욱 슬프고 절망적으로 느껴지기도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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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속초시의 대표 명소인 울산바위

결국 영화는 개봉됐고 세상이 사건을 알게 됐다. '또 하나의 약속'은 개봉 그 자체만으로 결과였던 것이다. 영화가 최종적으로 전달하고자 하는 메시지가 맨 앞에 등장하면 다소 부담스러워지는 경향이 있다. 강원도 특유의 정겨운 문화로 영화의 포문을 열고 관객들의 마음을 영화에 연착륙시킨 후, 본 메시지를 '또 하나의 약속'은 슬기롭게 전달했다. '또 하나의 약속'이라는 강원도 영화는 강원도의 문화만을 전달하는 수준을 넘어 사회적 기능까지 감당했다.

 

 

영화인들이여, 강원도로 오라

앞에서 누누이 말했듯이, 강원도는 강원도만의 문화가 독특하다. 겹겹이 쌓여있는 산지는 문화의 유입을 더디게 해 되레 고유의 문화를 오랫동안 유지시켜줬다. 산지가 70%인 한반도에서 어쩌면 강원도가 가장 한국적인 지형의 광역단체일지도 모른다. 그리고 특유의 먹거리와 사투리까지. 뚜렷하지 않을 수 없는 강원도다.

이렇게 특색이 뚜렷한데, 색다름을 평생 추구해야 하는 영화인들에게 강원도만큼 매력적인 지역도 없다. 일정 수준의 완성도를 가진 작품의 초안에 강원도의 색깔을 덧입히면 한 층 더 개성적인 영화로 거듭날 것이다. 고민하지 마라. 보통 영화들과는 다른 영화로 만들어줄 강원도로 오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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