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나라 연간 1인당 쌀 소비량이 계속해서 감소하고 있습니다. 지난 2008년 집계에서는 1인당 연간 75.8kg를 소비했는데, 9년이 지난 2017년 말 기준에서는 61.8kg로 집계됐습니다. 지난 9년 동안 8kg이 감소한 것이죠. 그래서 사실 우리 농가에서는 비상입니다.

정부에서도 줄어든 쌀 소비량을 늘리기 위해 다양한 대책을 시행 중입니다. 하지만 아무리 노력을 기울이더라도 이 같은 시대적 흐름을 바꿀 수 있을지는 모르겠네요. 쌀 소비량이 감소하는 이유는 간단합니다. 바로 빵순이, 빵돌이들 때문이죠. 서구식 식탁 문화가 결정적입니다.

그러나 비난 할 수도 없는 노릇이죠. 너무나도 개인적인 취향 문제이기 때문입니다. 더구나 쌀이 당뇨와 비만의 원인이라는 말들이 많은 탓이기도 하죠. 탄수화물에 대한 소비 자체가 감소한 영향도 있으니 서구식 식탁 문화가 취향인 분들을 탓하기도 어렵습니다.

그런대 말입니다. 우리가 너무나도 자주 접하지만 빵에 대해 얼마나 알고들 계신지 궁금하군요. 무려 3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는데 말이죠. 그래서 남성 전문 매거진으로써 어디서 써먹어 볼 수 있을 법한 지식의 전달을 위해 빵의 역사를 한 번 살펴봤습니다.

 

신석기 시대까지 거슬러 올라가는 빵
빵에 대해 알아보기 위해서는 주식이 쌀인 우리나라에서 정보를 얻기보다는 본토인 유럽으로 건너가 봐야겠죠. 그래서 유럽 사이트를 돌아다니며 정보를 취합해 봤습니다. “도대체 빵의 역사는 언제부터 시작됐을까?”라는 물음에 몇 가지 답을 발견할 수 있었습니다.

바로 고고학에서 빵의 역사가 설명되는데요. 연대기로 따졌을 때 지금으로부터 약 3만년 전에 무엇인가 식물을 빻는 용도로 추정되는 돌이 발견됐습니다. 그러니까 우리 인류의 조상 중 누군가가 바위에다가 어떤 식물을 두드리면서 빻았던 것이죠. 거기서 전분이 발견됩니다.

 

(출처=BBC)
(출처=BBC)

이 때문에 유럽에서는 약 3만년 전 식물의 뿌리 등에서 추출한 전분을 평평한 바위에 올리고, 이를 불 위에 올리면서 원시적인 형태의 빵을 만들어 먹었을 것으로 추정합니다.

또한 현재 요르단의 북동부 사막에 거주했을 것으로 추정되는 나투피안인들의 지역에서 빵을 구웠을 것으로 추정되는 건물을 발견합니다. 먹고 남은 빵 조각들도 발견됐죠. 지금으로부터 약 14,000년 전으로 추정됩니다.

남은 빵 조각을 연구한 코펜하겐 대학의 Amaia Arranz-Otaegui 박사에 따르면 고운 밀가루 입자를 얻기 위해 분쇄하는 과정, 물을 섞어 반죽하는 과정 등이 모두 발견됩니다. 양생 밀과 야생 보리를 섞은 흔적도 나타나죠. 아울러 빵을 얻기 위해 조리한 행위가 아니라 고기를 감쌌던 용도로 확인됩니다.

오리의 겉을 진흙으로 랩처럼 감싸 굽는 요리인 베이징덕과 같이 사냥한 고기를 빵 반죽으로 감싸 구워 먹었다는 것이죠. 이를 인류 최초의 요리 흔적, 최초의 샌드위치나 햄버거로 바라봐야 한다는 이야기까지 나오고 있습니다.

 

주식으로 정착한 빵의 발전사
빵을 만드는 법은 간단합니다. 밀가루에 물을 적당량 붓고 반죽을 만들어 불에 굽는 것이죠. 여기서 빠진 것이 있다면 이스트(효모)와 소금입니다. 만약 밀가루와 물만으로 빵을 만든다면 식감이 엄청나게 투박할 것이고, 간이 없어 매우 맛이 없을 것입니다.

최초의 발효 빵에 대한 기록은 고대 이집트(B.C 4,000년)까지 거슬러 올라갑니다. 지금은 슈퍼에 가면 흔한 것이 이스트지만, 이스트라는 것을 발견한 것은 1600년대입니다. 그래서 기원전 4,000년 전 고대 이집트에서 만든 발효된 빵은 과일 등에서 얻었을 것으로 추정됩니다.

당시 기록들을 살펴보면 꽤나 종류도 많았습니다. 보존력은 우수하지만 너무나도 딱딱한 빵에서부터 발효빵, 무발효빵, 부드러운 빵들이 있었고, 모양과 쓰임새도 제각각이었습니다. 주식의 용도도 있었고, 의식용, 장식용, 제물용 등으로도 활용됐습니다. 이 같은 식문화가 로마에 전파됐고, 로마 제국에 의해 세계 곳곳에 유래되면서 빵이 널리 퍼졌다는 것이 정설입니다.

 

하지만 빵은 각 지역의 환경에 따라 발전했는데요. 물이 부족한 척박한 환경에서는 그저 물을 적게 넣고 얇게 편 형태의 빵으로 발전했죠. 카레와 함께 먹는 난 종류가 대표적입니다. 유럽에서도 화덕은 일부 귀족들의 전유물이나 다름없고, 한 마을에 하나의 화덕 정도가 있었기 때문에 가난한 농민들은 한 번 빵을 구울 때 최대한 많은 양을 구워야 했습니다.

이는 맛 보다는 보관이 오래가는 투박하고 딱딱한 큰 빵이 발전한 계기죠. 그래서 지금도 유럽에서 빵은 맛이 거의 없는 크고 투박한 빵 종류를 의미합니다. 우리나라처럼 단팥빵이나 크림빵들은 빵이 아니라 과자로 취급되죠. 반대로 우리의 주식인 밥에 쓸데없이 이것저것 섞는다면 우리 역시 그것을 밥으로 인정하지 않을 것입니다. 간단한 이치죠.

또한 중세 유럽에서는 귀족과 서민이 먹는 빵의 질이 완전히 달랐습니다. 귀족은 밀가루를 주로 사용해 부드러운 빵을 즐겼고, 서민들은 귀리나 호밀을 사용해 투박하고 거친 빵을 먹어야 했죠. 근대에 접어들면서 집집마다 화덕을 갖추기 시작하면서 차이가 적어졌고, 현대식 빵 공장은 2차 산업혁명시대와 맞물려 1900년대 초에 발명되었습니다. 특히 1960년대 발효 시간을 대폭 축소하는 방법이 고안됐죠.

이때부터 빵을 만들기 시작해 굽고 식탁에 올리기까지 3시간 남짓의 시간이 소요됩니다.

 

성심당

일본으로부터 전래된 빵
우리나라 최초의 빵에 대한 기록은 일암(一菴) 이기지(李器之, 1690~1722)가 저술한 ‘일암연기(一庵燕記)’라는 저서에서 발견됐다고 합니다. 아버지를 따라 베이징의 천주당(카톨릭성당)에서 서양떡을 먹은 기록을 저서에 남겼는데, 부드럽고 달았으며 입에 들어가자마자 녹으니 참으로 기이한 맛이었다고 회상합니다.

그러나 우리나라에 빵이 처음 소개된 것은 19세기 선교를 위해 한반도를 찾았던 유럽 출신의 카톨릭 신부들에 의해서라고 알려졌습니다. 이후 1921년 11월 서울 용산에 한 일본인이 풍국제분주식회사를 설립하면서 우리나라에서 본격적으로 빵이 만들어지기 시작합니다.

빵에 대해서도 우리는 일본에 뒤쳐졌었는데요. 우리나라에 일본인들이 제분회사를 차리기 전부터 일본 현지에서는 그들 나름의 방식으로 다양한 빵들을 만들고 있었습니다. 이 때문에 사실상 우리가 현재 접하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빵은 일본의 영향을 받아 만들어졌다고 보는 것이 타당합니다. 제빵 기술 자체가 일본인들에 의해 우리나라에 전래된 것이죠.

해방 이후에는 미군들이 제공해주는 밀가루와 설탕으로 만든 빵이 큰 인기를 끌었습니다. 이에 허창성(許昌成, 1914~2003)이라는 사람이 제과업에 뛰어들었지만, 곧바로 전쟁이 발발했고, 1959년 서울 용산에서 빵과 비스킷을 대량생산할 수 있는 공장을 엽니다. 이것이 오늘날 삼립, 샤니 브랜드로 유명한 당시 이름으로 삼립산업제과주식회사입니다.

그리고 1980년대부터 동네 빵집마다의 특색이 사라지기 시작합니다. 장사가 잘되던 빵집들이 너도나도 프랜차이즈 사업에 뛰어들어 여러 지역에 똑같은 맛의 빵을 공급하기 시작하죠. 그러자 등장한 것이 바로 2000년대 파리바게트와 뚜레쥬르입니다. 완전한 기업형 빵집입니다. 하지만 여전히 지역 곳곳에서는 전통성을 무기로 명성을 떨치고 있는 빵집들이 있죠. 부디 오래오래 계속 명성을 이어나가 우리나라 빵 문화의 역사를 지켜주길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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