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2년을 바라보는 지금 어느새 너무나도 많은 OTT(Over The Top, 인터넷을 통해 언제 어디서나 미디어 콘텐츠를 시청할 수 있는 플랫폼) 종류가 생겨났다. 이 대대적 미디어 변화의 흐름에 애플 역시 무시할 수 없었으며 애플은 애플TV를 내세우며 OTT 시장에 합류했다. 

▲ 김지운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 애플TV+의 'Dr. 브레인' (사진: 애플TV+, 바운드엔터테인먼트, 카카오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다크서클픽처스)
▲ 김지운 감독의 첫 드라마 연출작 애플TV+의 'Dr. 브레인' (사진: 애플TV+, 바운드엔터테인먼트, 카카오엔터테인먼트, YG엔터테인먼트, 다크서클픽처스)

OTT 시장이 본격화되고 대한민국발 콘텐츠들은 활개를 띄기 시작했다. ‘킹덤’, ‘오징어 게임’ 등은 OTT 시장 합류 기업들이 대한민국 문화 가치에 대해 재고하게 했으며 이 흐름에도 애플이 주목해 애플TV+ 최초 한국어 작품을 제작했다. 

아무리 대한민국이 OTT 시장에서 가장 뜨거운 나라라고 해도 무작정 제작할 순 없는 노릇이다. 검증된 배우와 검증된 감독이 필요했다. 애플TV+가 내놓은 'Dr. 브레인'의 주연 배우는 이선균이었다. 그리고 감독은 김지운이었다.

이선균은 이미 그동안 드라마와 영화를 오가며 다수의 대표작을 만들어본 배우였기에 'Dr. 브레인' 출연 소식이 그렇게 큰 놀라움은 없었다. 'Dr. 브레인'의 감독이 김지운이라는 것에 대부분 놀랐다. 대한민국 대표 흥행감독이면서도 첫 드라마 연출이었기 때문이다.

▲ (사진: 네이버 영화, 루이스 픽처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 (사진: 네이버 영화, 루이스 픽처스,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그동안 영화만 연출하고 드라마를 처음 연출하는 김지운을 애플은 왜 선택했을까? 이유는 김지운이 그동안 만들어온 영화들을 보면 알 수 있다. 장르에 구애받지 않고 수작들을 연신 내놓은 김지운의 다양성에 애플은 주목한 것이다. 김지운의 다양성, 아래의 영화들을 다시 감상해보면 애플의 선택을 이해할 수 있다.

 

 

코미디 : 반칙왕

김지운 감독은 1998년 '조용한 가족'이라는 요상하면서도 소름 끼치는 스릴러물로 한국영화계에 데뷔한다. 김지운 감독만의 독특한 미장센은 주목받기에 충분했으며 다음 장편영화 '반칙왕'으로 '조용한 가족' 때보다 더 큰 주목을 받는 데 성공한다.

단적으로 말해서 '반칙왕'은 코미디다. 그저 평범했던 은행원 임대호에게 스며든 프로레슬링의 존재는 우스꽝스러운 것이 먼저였다. 하지만 그 코미디에서 여러 감정들이 묻어나왔다.

▲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사 봄, 시네마서비스)
▲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사 봄, 시네마서비스)

20세기 말 직장인으로 살아가면서 쌓아가는 울분, 가면을 써야만 좋아하는 사람에게 밝힐 수 있는 순애보 등은 '반칙왕' 안에서 오묘하게 연출돼 보다 심층적인 코미디 영화로 발돋움했다. 특히나, 반칙을 일삼아야 하는 악역임에도 임대호는 프로레슬링 스타 유비호에게 피를 뿜으며 맞서는 마지막 장면은 '반칙왕'을 단순한 코미디 영화로 치부할 수 없게 했다.

그렇게 김지운은 자신만의 페르소나 송강호와 함께 코미디라는 장르를 한 쪽 팔에 장착하는 데 성공했다.

 

공포 : 장화, 홍련

사람은 보통 자신이 잘 하는 것이 무엇인지 깨닫게 되면 그 것을 한동안 계속 파고드는 습성이 있다. 하지만 김지운에게 이 습성은 없는 것 같다. '반칙왕' 이후 여러 단편영화를 제작하고 다시 상업영화를 구상하는데, 장르는 공포였다. 코미디에서 공포라니. 그야말로 도전이었다.

전작을 코미디로 연출했다는 사실을 전혀 알아차리지 못 할 만큼의 완성도였다. '장화, 홍련'은 2022년을 바라보고 있는 한국영화 역사에 있어 아직도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는 한국산 공포영화다. 2003년은 한국영화가 가장 찬란했던 한 해로 기억된다. 여기에 김지운 역시 '장화 홍련'으로 한 축을 담당했다.

▲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사 봄, 영화사 마술피리, 청어람)
▲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사 봄, 영화사 마술피리, 청어람)

못 만든 공포영화에서 자주 보이는 과한 점프 스쿼드도 없었다. 서늘한 별장의 분위기와 웃음기 없는 가족 간의 표정은 '장화, 홍련'의 공포 분위기를 중추적으로 담당했다. 그리고 영화 전체를 봐야만 알 수 있는 비밀까지. 이 모든 것이 유려하게 연출됐다. 다시 한 번 느껴진다. 정작 김지운 감독의 전작 장르가 코미디 맞는가?

이번엔 김지운의 페르소나도 없었다. 새로운 장르를 향한 시도였다. 그럼에도 명작 공포영화를 만들었다. 김지운의 연출 감각에 인정하지 않을 수 없었다. 그렇게 김지운은 또 다른 장르로 시선을 돌렸다.

 

느와르 : 달콤한 인생

김지운은 2년 간의 공백을 가졌다. 2005년 새로운 장르를 시도하면서 새로운 페르소나를 만나게 된다. 새로이 시도하는 느와르에서 새로운 얼굴 이병헌을 영화 전면에 내세웠다.

2005년 김지운 자신은 새로이 시도하는 느와르 장르라지만, 당시 한국영화 역사에 있어 느와르 명작은 여럿 있었다. 이창동의 '초록물고기', 이명세의 '인정사정 볼 것 없다', 곽경택의 '친구'까지. 이 모든 명작들을 김지운은 넘어서야 했다. 그렇게 김지운은 그 영화들과 어깨를 나란히 하는 느와르 영화 '달콤한 인생'을 만들었다.

▲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사 봄, CJ ENM)
▲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사 봄, CJ ENM)

앞선 느와르 명작 한국영화들에 비하면 오락적 요소들은 더 많았다. 피가 터지는 총격 장면, 남녀 간의 묘한 교감 등이 '달콤한 인생'에 들어있었다. 하지만 그럼에도 '달콤한 인생'의 주인공 김선우 역을 연기한 이병헌의 표정 변화는 그리 격하지 않았다. 그리고 대부분 어두운 색채들이 영화를 감쌌다. 결국 대중들은 한국 느와르 영화라 하면 '달콤한 인생'을 먼저 떠올리게 됐다.

다시 한 번 나열해보면, 코미디에 이어 공포에 이어 느와르였다. 한 명의 감독이 모두 시도하고 연출한 장르다. 김지운에게 같은 장르를 다시 시도하는 법은 없다보다. 또 다시 김지운은 새로운 장르를 모색했다.

 

서부극 :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

느와르 영화 '달콤한 인생'을 연출하고 나서 3년의 공백을 가진 김지운이었다. 3년의 공백 기간 동안 김지운이 주목한 장르는 서부극이었다. 서부극이란 19세기 소설로 시작하여 영화로 발전된 장르인데, 개척정신을 필두로 미국의 서부를 질주하는 것이 작품의 대표가 되면 된다. 이 조건 부합하여 서부극을 만들 수 있는 환경이 우리나라에 존재하긴 할까? 이 의구심을 김지운은 다시 영화적으로 풀어냈다.

서부극 장르 영화 '좋은 놈, 나쁜 놈, 이상한 놈'을 만들기 위해서 김지운은 자신의 대표 페르소나 둘을 소환했다. 이상한 놈에 송강호와 나쁜 놈에 이병헌. 그리고 새 얼굴 정우성을 좋은 놈으로 섭외해 꿈의 3조합을 만들어낸 것이다.  

▲ (사진: 네이버 영화, 바른손, 영화사 그림, CJ ENM)
▲ (사진: 네이버 영화, 바른손, 영화사 그림, CJ ENM)

주연 배우가 셋이나 되고 이들 모두 한국영화를 대표하는 얼굴들이었다. 자칫 투-머치가 되지 않을까라는 우려는 기우였다. 목숨과 보물지도를 쫓고 쫓으며 벌이는 모래벌판 추격과 총격씬은 한국형 서부극의 느낌을 물씬 받았다. 우리나라에서도 서부극이 가능하다는 것을 영화인 그리고 대중 모두가 깨닫는 순간이었다.

또 다시 나열해보겠다. 코미디, 공포, 느와르 그리고 서부극까지. 이쯤 되면 김지운에게 새로움은 마치 의무감 같다. 그렇게 또 다시 김지운은 했던 장르엔 시선 조차 두지 않고 새로운 장르를 모색했다.

 

슬래셔 : 악마를 보았다

김지운은 2009년 '선물'이라는 한 편의 단편영화를 만들고 다시 상업영화로 복귀한다. 이번에도 역시 그동안 시도하지 않았던 장르를 선택했다. 이번에 선택한 장르는 그야말로 과감했다. 상업적 흥행에 상당한 어려움이 있는 슬래셔였다.

공포에는 여러 하위 개념들이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슬래셔인데, 슬래셔는 단순하다. 살인마가 사람을 죽이며 잔혹한 장면이 영화의 주를 이루면 된다. 이를 김지운이 선택한 것이다. 이 어려운 장르영화 '악마를 보았다'를 위해 다시 한 번 페르소나 이병헌을 섭외했으며 이병헌의 맞은 편에는 또 한 명의 거장 배우 최민식을 앉혔다.

▲ (사진: 네이버 영화, 페퍼민트컴퍼니, 쇼박스)
▲ (사진: 네이버 영화, 페퍼민트컴퍼니, 쇼박스)

한국영화 역사에 최민식이 연기한 장경철만큼 강렬한 빌런은 또 없다. '다크나이트'의 조커를 한국영화에 대입 했을 때 가장 가깝다고 평가받을 캐릭터가 장경철일 것이다. 그만큼 영화 내내 장경철이 미친 행동들은 영화 '악마를 보았다' 그 자체가 됐다. 그리고 그 장경철에 맞서 지독하게 대응하는 이병헌이 연기한 김수현 역시 독했다. 슬래셔 영화답게 영화 곳곳에 배치된 잔혹한 핏빛 장면은 ‘악마를 보았다’의 장르적 정체성을 유지시켜 줬다.

김지운이 그동안 여러 장르영화를 내면서 대부분 결과는 성공적이었고, 해당 장르의 대표작이 됐다. 하지만 이번 '악마를 보았다'는 그동안 김지운이 시도했던 여러 장르영화들 중에 가장 호불호가 갈리는 평가를 받았다. 평가와 별개로 김지운이 과감히 슬래셔 영화를 시도했다는 사실은 사라지지 않는다.

 

시대극 : 밀정

우리나라 역사처럼 색깔이 뚜렷하고 모든 예술계들이 끊임없이 창작하고 싶은 소재거리가 많은 문화권도 없을 것이다. 그렇다. 김지운이 특정 시대가 영화의 주가 되는 시대극을 그동안 하지 않았던 것이다. 2016년 김지운은 독립운동기를 배경으로 한 '밀정'을 세상에 내놓았다.

주연은 새로운 얼굴과 페르소나의 조합이었다. 의열단원이지만 경성에 사진관 운영과 골동품 거래꾼으로 위장하고 있는 김우진을 공유가 연기했다. 임시정부를 배신하고 총독부 경무국 경부까지 올라간 이정출을 송강호가 연기했다. 영화 초반부를 감싸는 이 둘의 심리적 밀당(?)은 1차적으로 관객들의 마음을 훔쳤다. 그리고 밀정을 밀정으로 만든다는 전개와 함께 장채산이란 인물로 등장한 이병헌의 존재감은 '밀정'이란 영화의 무게감에 방점을 찍게 했다.

▲ (사진: 네이버 영화, 영화사 그림, 워너 브라더스 코리아)

한국영화사에 독립운동을 소재로 한 영화는 무수히 많다. 하지만 모두가 성공하지 않는다. 어설프게 소재로 삼아 대중들의 뭇매를 맞고 사장된 영화들도 많다. 하지만 '밀정'은 아니다. 대표적 독립운동 영화로 소개돼도 부족하지 않을 완성도였다. 김지운은 시대극마저도 섭렵한 것이다.

마지막으로 나열해보겠다. 코미디, 공포, 느와르, 서부극, 슬래셔 마지막으로 시대극까지. 김지운에게 중첩은 없다. 필모그래피만 봐도 입증되는 김지운의 다양성에 애플은 확신했던 것이며, OTT 시장에 가장 뜨거운 대한민국 개척 선봉장에 김지운을 선택한 것이다. 애플의 선택 이해가 된다.

 

 

김지운의 다음은 무엇일까?

시도하지 않은 장르를 찾는 것이 더 어려울 정도로 김지운은 다양한 장르를 시도했다. 장를 넘어 김지운은 플랫폼의 다양성까지 꾀해 애플과 합작하여 드라마까지 연출하고 있다. 이 시점에서 드는 궁금증은 하나다. 과연 김지운의 다음은 무엇일까?

아무도 모른다. 김지운 감독 본인만 알 것이다. 아니 김지운 본인도 모를 수도 있다. 하지만 몰라도 된다. 괜찮다. 꽤나 높은 확률로 김지운은 새로운 장르를 시도해 대중들이 인정할만한 영화들을 연신 내놓았으니까. 김지운 감독의 다양성을 이해하는 대중이라면 그저 기대감을 가지고 그를 기다리면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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