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 = 강민혜(한양마음소리 심리상담연구소 소장)

 

같이 놀이하는 친구에게 놀잇감을 양보하고 친구가 속상해하면 위로를 해주는 등의 친사회적인 행동은 4~5세경부터 발달하기 시작합니다. 아이가 이 연령대가 되면 아이가 친구에게 양보를 전혀 하지 않아 아이의 사회성이 고민이라는 부모님들께서 상담을 많이 의뢰하십니다. 반면 지나칠 정도로 친구들에게 양보를 다 해버려서 자기 몫도 챙기지 못하는 것 같아 고민이라는 분들도 계십니다.
 
아이의 손에 젤리가 2개 있습니다. 젤리 2개 중에 1개를 다른 친구에게 나눠주는 것은 이타적인 행동에 가깝습니다. 하지만 젤리 2개를 전부 친구에게 줘버리는 것은 자기희생적인 행동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 자기중심성이 강한 아동기의 특성을 고려했을 때 내 몫까지 친구에게 전부 양보하는 행위는 발달 단계상 적절하지 않은 행동이기도 합니다.

자기희생적인 행동에는 몇 가지 원인이 있을 수 있습니다.

 

양보, 배려 등 이타적인 행동에 대해 자주 칭찬받은 경우

아이의 이타적인 행동(친사회적인 행동)을 교육하고자 특정 행동에 대해 자주 칭찬을 하시는 부모님들이 계십니다. 동생에게 아주 사소한 도움을 줬을 때에도 “우와, 우리 꽃잎이가 동생을 정말 잘 도와주네! 진짜 착하다!”, 친구에게 간식을 양보했을 때에는 “우리 꽃잎이가 친구한테 이렇게나 양보를 잘 하는구나! 정말 착해!” 라고 하시죠.

이렇듯 양보를 하거나 배려를 하는 행위에 대해 자주 칭찬을 들으며 자란 아이는 무의식중에 '나보다 남을 위하는 사람이 착한 사람이야.'라는 신념을 갖게 될 수 있습니다. 이러한 신념은 부모나 담임선생님과 같은 권위가 있는 어른에게 칭찬을 받기 위한 수단이 되기도 합니다.

칭찬을 의식하며 시작된 이타적인 행동은 아이의 몸에 밴 습관처럼 될 수 있습니다. 특히 순응적인 성격이거나 칭찬과 같은 보상에 민감하게 반응하는 아이의 경우에는 이러한 칭찬에 더욱 민감하게 반응하는 경향이 있답니다.

만일 평소 아이에게 이타적인 행동에 대해 지나칠 만큼 칭찬을 해줬다면 앞으로는 칭찬의 방향을 살짝 바꿔주세요. 양보를 했을 때 과할 정도로 칭찬을 하는 것이 아니라 본인의 몫을 적당히 잘 챙겼을 때 칭찬해 주는 것이죠.

“우리 꽃잎이가 예전에는 친구들한테 젤리를 다 양보해버려서 속상해했었잖아. 근데 오늘은 이렇게 씩씩하게 꽃잎이 꺼 젤리를 하나 남겨뒀네?! 아주 잘 했어!”

특히 아이에게 어린 동생이 있는 경우 동생을 돌봐주거나 도와주는 등의 행위를 했을 때 지나치게 칭찬하는 것은 좋지 않습니다. 누군가를 돌보는 돌보는 '양육적인 행위'에 대해 어릴 때부터 칭찬을 받고 자란 아이는 나중에 성장해서도 자신을 돌보는 행위에는 미숙하고 늘 남만 돌보는 사람이 될 수도 있으니 주의해야 합니다.

 

부모의 자기희생적인 태도를 보며 후천적으로 습득한 경우

부모가 한국어를 쓰면 아이도 한국어를 쓰며, 부모가 영어를 쓰면 아이 역시 영어를 쓰게 됩니다. 아이는 부모를 따라 성장하게 된다는 것인데요, 삶을 살아가는 태도 역시 마찬가지입니다.

누군가에게 불리한 일을 당했어도 전혀 표현하지 못하고 혼자 끙끙 앓는 부모, 내가 손해를 많이 보더라도 늘 주변에 헌신적으로 다 퍼주는 부모.. 부모의 이런 모습을 보며 자란 아이는 자기희생적인 태도를 후천적으로 습득하게 될 수 있습니다.

제가 상담 중인 아이 부모님들 중에도 주변에 아주 사소한 피해라도 줄까 봐 전전긍긍하는 분들이 계십니다. 삶을 살아가는 초점 자체가 '나 자신'이 아닌 '타인'에 맞춰져 있는 것이죠. 보통 이런 분들의 자녀 역시 '내 것'을 챙기는데 소극적이게 되며 상대의 눈치를 보게 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물론 오랫동안 살아온 삶의 방식을 갑자기 바꾸기는 매우 어렵습니다. 하지만 내가 평생을 자기희생적인 태도로 살아오며 너무 지쳤다면 자녀에게는 그런 태도를 대물림하지 않도록 노력해야겠지요? 습관처럼 자기희생적인 행동이 튀어나올 때마다 “아, 내가 또다시 나를 희생시키며 이 사람한테 배려하고 있구나.”하며 자신의 자기희생적인 태도를 자각하는 연습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기질적으로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경우

타고나기를 타인과의 관계에서 주고받는 다양한 신호에 민감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이런 아이를 기질적으로 '사회적 민감성'이 높다고 얘기합니다.

내가 거절했을 때 친구가 속상할까 봐 친구의 표정을 지나치리만큼 살피는 모습, 친구가 원하는 대로 양보해 주지 않았을 때 친구가 화를 낼까 전전긍긍하는 모습, 상대의 아주 사소한 목소리 톤의 변화나 얼굴 표정의 변화에도 “화났어?”라고 살피며 의식하는 모습 등은 사회적 민감성이 높은 아이들에게서 흔히 나타납니다.

만일 아이가 이런 부분에 대해 평소 자주 걱정한다면 이렇게 설명해 주세요.

“바람이가 화를 내서 꽃잎이가 많이 속상했겠네. 근데 바람이가 꽃잎이를 싫어해서 화를 낸 게 아니야. 바람이는 자기가 갖고 싶은 장난감을 갖지 못해서 잠깐 속상해하는 거야. 이건 꽃잎이가 신경 쓰지 않아도 되는 거란다.”

이렇듯 아이가 지나치리만큼 상대의 감정을 의식하는 것을 경계해 주세요. 그리고 상대의 행동의 원인에 대해 객관적으로 구분해 주는 것이 필요합니다. 아울러 상대가 느끼는 감정이나 행동에 대해 전부 책임져줄 필요는 없다는 메시지를 아이에게 가르쳐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관계욕구가 높아 자기표현을 하지 못하는 경우

기질적으로 타인과 친밀한 관계를 맺고자 하는 욕구가 강한 아이들이 있습니다.

외향적이며 관계욕구가 강한 아이들의 경우에는 친구가 내 뜻대로 따라주지 않을 때 마구 화를 내거나 관계를 주도하기도 합니다.

반면 내성적이며 친밀한 관계에 대한 욕구가 높은 아이들은 친구에게 주로 맞춰주는 방식으로 관계를 유지하기 위해 노력하게 됩니다. 친구와의 친밀한 관계가 단절되는 것이 두려워 거절이나 의견 말하기와 같은 자기표현을 잘 하지 못하게 되는 것이죠. 이런 경우라면 '자기표현 훈련'이 도움이 될 수 있습니다. 놀이치료와 같은 전문적인 도움을 받기 어렵다면 집에서 아이와 함께 역할놀이를 통해 가르쳐주셔도 좋습니다.

제가 진행 중인 놀이치료 사례 중에 자기표현이 어려운 아이에게는 다음과 같은 방식으로 역할놀이를 진행하곤 합니다. 놀이 중 의도적으로 갈등 상황을 연출한 후 나의 의사를 구체적이고 직접적인 방식으로 상대에게 표현하는 것을 보여주는 것이죠.

“꽃잎아, 그 인형은 선생님이 먼저 하려고 가져온 거야. 선생님 차례가 끝나면 다음에 꽃잎이한테 빌려줄게. 어때?” 혹은 “꽃잎아, 선생님도 그 인형을 하고 싶고 꽃잎이도 하고 싶어 하네. 그럼 우리 가위바위보 해서 이긴 사람이 먼저 하는 걸로 할까?”와 같이 타협하는 방식을 구체적으로 가르쳐줘도 좋습니다. 그 후 다음 역할놀이에서는 꽃잎이가 이런 표현을 반복해보도록 교육하는 것이죠.

어떤 이유로든 자기희생적인 태도로 또래 관계를 유지하는 아이들에게는 가정에서 꾸준히 '자기표현 훈련'을 시켜주면 도움이 됩니다. 물론 아이에게 익숙하지 않은 방식으로 또래 친구들과 관계를 맺기까지는 많은 시간과 노력이 필요할 수 있습니다. 하지만 현재의 자기표현방식이 아이의 관계적 특성으로 자리 잡지 않도록 적절한 도움을 주는 것이 중요합니다.

 

글 = 강민혜

한양마음소리 심리상담연구소 소장. 한양대학교 일반대학원 의과대학 아동심리치료학과 석사를 졸업하고 현재 한양마음소리를 운영하며 심리상담 및 놀이치료, 심리평가 등을 전담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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